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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육

어떻게 학교 영어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 (feat.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어 공부법)

by 의지의 두부씨 2020. 6. 16.

이것은 내가 평생 고민해온 문제이기도 하고, 많은 한국인들의 고민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영어 공부에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였는데, 외국인과 대화할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왜 이리도 작아지는가. 한국의 공교육을 충실히 받은 사람이라면 분명 학교에서 배웠던 영어와 실제 소통하기 위한 영어 사이의 괴리를 적어도 한 번 이상 절감한 적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실전 영어에서 학교 영어로 역행하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했는데 이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볼까 한다. 초등학생 때 나는 가족들과 1년이 채 안 되게 미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미국에 가기 전에는 동네의 흔한 영어학원에서 banana, apple 같은 수준의 단어들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영어를 정말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미국에 보내져 현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다. 당시에 우리 가족이 살았던 동네에는 한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꽤나 희귀한 동양인이었다. 다행히도 (아마도 어려서였겠지만) 반 친구들은 나의 다름을 차별이 아닌 호기심으로 맞아 주었고, 낯도 많이 가리고 영어도 못하는 내게 계속해서 이름을 물어 보며 말을 시키려 하곤 했다.

 

그러고는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어렸을 때라 나의 기억이 왜곡되고 과장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얼마간은 친구들이 말하는 것만 열심히 듣다가, 어느 날 갑자기 뭔가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부터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몇 살이 가장 외국어를 배우기에 좋은 나이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경험상 내가 미국에 있었던 9살 때쯤이 아닐까 싶다. 정말 스펀지처럼 새로운 언어를 빨아 들이듯 배웠고, 다행히도 친구들이 나랑 잘 놀아주어서 슬립 오버도 많이 하고 생일 파티도 다니고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 놀며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 없는 생활을 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입시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문제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였던 것 같다. 미국에서의 경험이 있다 보니 나는 영어를 좋아했고 또 잘하는 편이었다. 의사소통을 위한 영어, 실전 영어 위주로 영어를 배워오다가, 학원에서 시험을 위한 영어를 배우며 단어 암기와 문법 위주의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또 문제는 여기에 적응을 너무 잘해버림... (이렇게 영어 소통 능력이 150% 하락했습니다?!) 청소년기의 나는 매우 순응적이고 문제 의식 1도 없는 해맑은 아이였기에 학교에서,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영어 공부를 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영어로 말하고 글쓰는 능력이 퇴화된 느낌이랄까. 

 

더 이상 시험을 위한 영어가 아니라, 실제 영어 소통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가 오며 나의 영어 능력의 역행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왜 영어로 말하는 게 두려워진 걸까? 분명 영어를 좋아했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심지어 그래서 영문과에 진학했는데 흡...) 왜죠...!! 물론 실수하기를 두려워하고 완벽한 문장만을 구사하고 싶어하는 나의 성격적인 측면의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험을 위한 영어, 소통을 위해서가 아닌 평가를 위한 영어, 문법 지식의 배틀 같은 영어 교육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재미있는 사람 손...?

 

의외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가 이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가 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학교 영어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긴 부분이 있다.

 

나는 고등학교 중반쯤부터 영어 소설을 원문으로 읽었습니다. 딱히 영어가 특기였던 것은 아니지만, 꼭 원어로 소설을 읽고 싶어서 혹은 아직 일본어로 번역되지 않은 소설을 읽고 싶어서 고베 항 근처 헌책방에서 영어 페이퍼백을 한 무더기에 얼마, 라는 식으로 사다가 뜻을 알든 모르든 닥치는 대로 와작와작 난폭하게 읽어댔습니다.

처음에는 아무튼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익숙해졌다'고 할까, 그다지 저항감 없이 알파벳 책을 읽어냈습니다.

그 당시 고베에는 외국인이 많이 살았고 큰 항구가 있어서 선원들도 많이 찾아왔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한꺼번에 팔고 가는 양서가 헌책방에 가면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내가 당시에 읽은 책은 대부분이 화려한 표지의 미스터리나 SF 같은 것이라서 그리 어려운 영어가 아닙니다. 말할 것도 없지만, 제임스 조이스라든가 헨리 제임스라든가, 그런 까다로운 책은 고등학생으로서는 도저히 감당을 못하지요.

하지만 어쨌거나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단은 영어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호기심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 영어 시험 성적이 향상되었는가 하면 그런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여전히 영어 성적은 시원찮았습니다.

어째서인가. 나는 당시 그것에 대해 상당히 골똘히 고민해봤습니다. 나보다 영어 시험 성적이 좋은 학생은 아주 많았지만 내가 본 바로는 그들은 영어 책 한 권을 통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대충 슬슬 즐기면서 읽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도 왜 내 영어 성적은 여전히 별로 좋지 않은가.

그래서 이래저래 생각한 끝에 내 나름대로 납득한 것은 일본 고등학교에서의 영어 수업은 학생들에게 살아 있는 실제적인 영어를 습득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 대학 입시의 영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따는 것, 그것을 거의 유일한 목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영어로 책을 읽을 줄 안다거나 외국인과 일상 회화가 가능한 것은 적어도 내가 다닌 공립 고교의 영어 선생님에게는 사소한 일일 뿐이었습니다('쓸데없는 일'이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한 개라도 더 어려운 단어를 외우고 가정법 과거완료형이 어떤 구문이 되는지 외우고 올바른 전치사나 관사를 고르는 것이 중요한 작업입니다.

 

한국식 영어 교육을 오랫동안 받은 사람으로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 크게 공감이 되었다. 대학생 때도 학생들에게 영어를 많이 가르쳤었는데, 몇 년 후 다시 영어의 길로 돌아와보니 여전히 우리의 영어 교육은 내가 배우던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을 알고 놀랐다. 여전히 영어 시험은 실제 영어와는 거리가 멀었고, (내가 영어 공부를 했던) 약 20년 전부터 강조되었던 내용이 여전히 강조되고 있었으며, 실력을 위한 영어라기보다는 점수를 위한 영어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내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영어가 아니라 그저 공부를 위한 "공부"로서의 영어인 것이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나는 아이들에게 영어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걸까. 학교 영어에만 매몰되어 있다가 진짜 세계에 나오게 되었을 때 내가 경험했던 좌절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다. 학교 영어와 실제 영어를 균형 있게 배울 수 있도록, 그리고 때가 되면 학교 영어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나중에 어떤 분야의 공부나 일을 하게 되든, 영어가 아이들의 발목을 잡지 않길, 그리고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영어로 자기 생각을 (서투르더라도) 자신 있게 전달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역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