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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마음

영화 소울, 기대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 스포 주의)

by 의지의 두부씨 2021. 1. 23.

 

 

 

영화 소울이 개봉하기 전, 마케팅의 일환인지 소울 테스트가 SNS를 돌아다니길래 심심풀이로 해보았다가 깜짝 놀랄 정도로 정확해서 영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단순히 영화 홍보를 위해 대충 만든 심리 테스트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확한 테스트 이름은 "나의 개성을 완성한 불꽃 찾기"였는데, 다른 불꽃에는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니 꽤나 다양한 불꽃 종류들이 있어 또 한 번 놀랐었다. 혹시 테스트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로!

 

 

 

소울 테스트

나의 개성을 완성한 불꽃 찾기

poomang.com

 

 

그리고 아무도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겠지만 나는 "사랑의 불꽃"이 나왔다.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해 온 내용들로 가득해서 나뿐만 아니라, 남편과 친구들도 모두 놀랐었지. 그래서 더더욱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코로나 시국. 영화관에 가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볼까 말까 망설이고만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일정이 특별히 없었던 날이라 필요한 걸 사러 외출하는 길에 이동진 평론가님께서 올리신 글을 보고 말았다. 픽사의 지난 10년 동안의 작품들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영화 소울 GV를 진행하신다고 해서 나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영화를 보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관 입장에서는 관람객이 너무 줄어 힘들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영화관을 거의 전세 내고 영화를 본 느낌이라 좋았다. 메가박스 MX관에서 관람했는데 사운드가 정말 훌륭해서 나중에 이 관에서 다시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함!

 

애니웨이, 결론적으로는 내가 기대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위로해주는 몇몇 장면들이 있었다는 것. 보고 난 직후의 느낌은, 이상하게도 (그리고 굉장히 오만하게도) '더 마음을 울리는 스토리로 쓸 수 있었을텐데'였다. 하지만 이건 개인의 취향인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픽사의 영화들이 내게는 다소 뻔한...? 소재는 정말 좋은데 더 깊숙히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을 항상 받았었기 때문에... (인사이드 아웃도 코코도... 특히 코코는 친구들과 같이 봤었는데 다들 눈물 짓고 있는데 나만 그 정도의 감동은 못 받았던 기억이...)

 

이번 영화 소울도 내게는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소울 테스트를 통해서도 그렇고, 방구석 1열에서 패널들이 간단히 소개한 내용에서도 그렇고, 소울, 개성, 불꽃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적어도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 부여 받는 고유한 불꽃들의 종류에는 무엇이 있는지, 특정 불꽃을 부여 받은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정도는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의 내용은 그리 명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멘토들이 태어나기 전의 소울들에게 영감을 주어 불꽃을 심어준다는 부분도 음... 개인적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했던 내용이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는 알겠다. 어떤 사람들을 위한 영화였던 것인지도. 평생을 음악, 특히 재즈만을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해 온 주인공. 위대한 업적을 세운 위인들에 비해서는 다소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결국 평범한 우리네 인생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다. 자신의 소질과 열정, 하고 싶은 바를 알고 있고 이를 위해 노력하지만, 안정을 중요시하는 엄마의 반대에 부딪혀 고민하는 모습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에 비해서는 행복한 축이 아닐까.

 

이와 반대로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건만) 세상살이에 벌써 염증을 느끼고 삶의 회의를 느끼는 영혼 22. 수많은 멘토를 경험하여 아는 것은 많지만, 자신의 불꽃이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찾지 못하는 인물이다. 영혼 22는 지금까지 경험한 수많은 위대한 멘토들에 비해 부족한 면이 많음에도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가진 주인공을 보며 처음으로 지구에서의 삶에 호기심을 가진다. 

 

그러다 주인공과 영혼 22가 지구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실수로 주인공의 영혼은 주인공 옆에 있던 고양이에게로, 영혼 22의 영혼은 주인공에게로 들어가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만다. 영혼 22는 주인공의 몸으로 그렇게도 싫어했던 인간의 삶을 경험하게 된다. 고양이 몸을 가진 주인공은 영혼 22를 따라 다니며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 알려 주는데, 영혼 22는 그것을 따르기도, 따르지 않기도 하며 음악을 그만 두러 온 학생이 음악을 더 할 수 있도록 자극하기도, 오랜 친구의 잘 몰랐던 다른 면을 알게 되기도, 엄마에게 진심을 털어 놓기도, 겨우 얻은 소중한 재즈 공연 기회를 날려 버리기도 하는 등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된다.

 

인간의 몸으로 삶을 체험하며 영혼 22는 조금씩 인간으로서 지구에서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갖게 되는데 이를 묘사한 순간들이 참 아름다웠다. 지하철 악사의 노래, 이발소 친구네서 먹은 막대사탕, 배고플 때 먹은 맛있었던 피자와 베이글, 반짝이는 햇살과 바람, 그리고 영혼 22 앞으로 떨어진 은행나무 씨앗. 주인공이 이야기 했듯, 언제든지 경험할 수 있는, 그저 그런 대단치 않은 일상적인 순간들이었다. 순간 순간의 행복으로 영혼 22는 삶의 의지, 즉 자신의 불꽃을 발견했던 것이다.

 

음악이 자신의 인생이었던 주인공에게는 영혼 22의 이야기가 너무 시시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런 건 불꽃이 아니야, 불꽃은 내가 느끼는 것처럼 무언가를 향한 엄청난 열정이라고. 이렇게 생각했겠지. 겨우 삶에 대한 호기심과 의지가 생겼던 영혼 22는 주인공의 이러한 말에 상처를 받고 지구에서의 삶을 포기하게 된다. 영혼 22가 포기한 지구 통행권을 얻은 주인공은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 그렇게도 고대했던 재즈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다. 하지만 곧 엄청난 공허감이 몰려온다. 자신이 그렇게도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루었는데 왜 이렇게도 허망할까.

 

주인공은 자신이 공연했던 재즈 밴드 대표의 말을 통해, 그리고 영혼 22가 남기고 간 사소한 물건들을 통해 진정한 인생이란 무엇인지, 영혼 22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깨닫게 된다. 인생이란 어떤 대단한 열정을 목표로 달려가는 것만이 아니구나. 매일의 일상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과 다름없구나.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의 작은 행복감, 우연히 마주친 악사의 노래를 통해 받는 감동, 눈부신 햇살과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 지금 여기의 자연을 느끼는 것 말이다.

 

이를 진심으로 깨닫게 된 주인공은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며 몰입을 통해 소울의 세계를 다시 마주한다. 상처 받은 영혼 22는 자기 영혼과 단절된 채 흑화(?)해있었다. 나는 충분치 않아. 나는 뭘 하고 싶은지, 뭘 원하는지도 몰라. 난 쓰레기야. 난 살 가치도 없어. 이런 어두운 말들로 자신을 꽁꽁 싸맨 채.

 

주인공은 영혼 22의 어두운 내면의 목소리들을 꿋꿋이 물리치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영혼 22에게 다가가 너의 말이 맞았다고, 너는 살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영혼 22가 자신에게 던져 버렸던 지구 통행권을 영혼 22에게 돌려준다. 나는 이미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봤으니 이제 네 차례란다. 너도 충분히 살 가치가 있는 소중한 영혼이라고 말해주듯이.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좋았는데, 영혼 22가 지구에 내려가길 무서워하자 주인공은 자신이 같이 내려가주겠다고 말한다. 영혼 22가 지구 통행권이 없으면 같이 갈 수 없지 않냐고 묻자, 주인공은 "같이 갈 수 있는 데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하며 같이 뛰어내린다. 지구로 떨어질 때,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는 지점까지 오자 주인공이 영혼 22를 쳐다보고, 영혼 22는 주인공의 손을 놓아 혼자 지구로 돌아가는 장면. 나는 이 장면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주인공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길 가슴 깊이 바랐다. 

 

하나뿐이었던 지구 통행권을 영혼 22에게 돌려준 주인공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죽음을 향해 떠나게 되는데 (주인공 대체 몇 번을 죽는 건지...!!) 영혼 22와의 일을 어여삐 여긴 영혼 세계 관리자들이 주인공이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관리자는 주인공에게 다시 지구에 가면 무엇을 할 지 물어보는데, 이 때 주인공의 답변이 곧 영화의 중심 주제이다. "잘 모르겠지만, 매 순간을 살 거예요" (정확한 워딩은 아닐 수 있음 주의!)

 

반드시 대단한 목표를 위해 사는 것만이 인생의 참 가치는 아니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상 같아 보여도, 매일 맞이하는 사소한 것들, 그것이 무엇이 됐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사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 역시 무언가 대단한 것을 성취하고 싶은 욕심은 가득한데, 그에 비해 나 자신은 너무 보잘 것 없는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에 지배 당할 시절 심한 우울과 무기력을 경험했었다. 흑화한 영혼 22가 어두운 내면의 목소리를 내보내며 주인공과 싸우는 장면은 삶의 의지를 잃고 어두운 나락에 빠져 있었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해서 상당히 놀라웠다. 삶의 목적을 잃고 힘겨워 하는 많은 이들이 깊이 공감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또 하나, 일을 쉴 때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과 무기력 때문에 심리치료를 받으며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이 때 느꼈던 것이 바로 영혼 22가 인간 세상에서 느꼈던 사소한 일상이 줄 수 있는 행복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행복은 대단한 목표를 가진, 각고의 노력을 쏟아 부은 사람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저 멀리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사람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것이라는 것. 내가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그저 숨 쉬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침대에서 일어날 정도의 기력 밖에 없다면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것을 30대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더 빨리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더 늦지 않은 게 어디야.

 

글을 쓰다 보니 영화에 대한 생각이 좀 더 명료하게 정리되는 것 같다. 사실 이동진 평론가님은 어떻게 보셨는지 넘나 궁금해서 빨리 소울 GV부터 보고 싶었는데, 누구에게도 영향 받지 않은 내 생각을 먼저 정리하고 나서 보려고 오랜만에 써보는 글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지만, 몇몇 따스했던 장면들은 마음 속에 잘 남겨 둬야지. 생각보다 너무 길어지고 두서 없어진 소울 리뷰는 이렇게 끝!

 

 

P.S. 이동진 평론가님과 김이나 작사가님의 소울 랜선 GV 영상도 첨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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