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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마음

너의 마음의 이름은.

by 의지의 두부씨 2020. 12. 23.

어스름했던 어느 날 새벽. 어두침침한 게 지금 내 마음 같다.

 

저녁잠을 자버리는 바람에 잠이 오지 않는 밤. 온 가족은 자고 있는데, 혼자 무언가에 마음이 쓰여 뭐라도 풀어내고 싶은 밤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와 글이라도 하나 써본다.

 

예기치 못하게 남편이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면서 요 몇 달 간은 통 정신이 없었다. 처음 며칠은 새로운 언어를 배울 생각에 신이 나고 새로운 생활이 펼쳐질 것이 기대됐는데, 그 잠깐 동안의 허니문 기간이 지나고 나자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거의 매일 매일을 스트레스의 연속으로 지냈던 것 같다. 해외 이사 준비에 출국 준비에 이것 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았는데, 도통 전체적인 일의 흐름이 머리 속에 딱 들어 있는 것 같지가 않으니 괜시리 불안해지고 계속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걱정이 생겼다.

 

다시 한 번 느낀 것이, 나는 정말 모든 것이 내 손 안에 들어와 있고,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통제적인 인간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불안은 심리적 위축과 무기력의 모습으로 찾아온다는 것도 다시금 느꼈다. 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는 여전히 무능력한 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내가 있는 것 같아 그런 내 모습이 실망스럽고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머리로는 안다. 이런 준비는 처음이니 모르는 것 투성이일 수밖에 없고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그리고 모르면 찾아보고 물어보며 알아가면 된다고. 하지만 막상 모르는 것을 맞닥뜨리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모르면 안 될 것만 같고, 갑자기 그 모르는 것이 엄청난 크기로 느껴지며 나를 덮쳐온다. 그러고는 손을 놔버리게 된다.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 하나도 모르겠어. 이런 마음이 들며 남편이 해결해주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남편은 나보다 훨씬 더 정신 없고 할 일이 많은데, 내가 일일이 이렇게 의지할 때마다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물론 남편은 내가 부탁하는 일 중에 본인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해주었다. 하지만 역시 부끄러운 일이었다. 함께 해야 마땅한 일이라는 생각, 나도 걱정 끼치지 않고 내가 할 일은 독립적으로 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얼마 전 해외 이사는 큰 문제 없이 잘 이루어졌고, 지금은 같이 본가에 들어와있다. 하지만 그 일련의 과정이 내게는 다사다난했지만 무사히 잘 마친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의 치부를 직면하게 된 시간이었던 것 같아 여전히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었다. 나는 나를 비판하는 능력을 아주 오랫동안 키워왔다고. 그렇기에 하루 아침에 나를 비난하고 탓하는 시선을 거둘 수는 없을 거라고. 올 하반기에도 분명 좋은 일, 즐거운 일, 잘한 일이 하나도 없지는 않았을텐데, 왜 나는 또 나의 서사를 이렇게 부정적으로 쓰게 되는 걸까. 한창 심리치료 받을 때는 나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이 들었었는데. 지금 이 마음, 몇 개월간 고여 있어 내 마음을 잠식해가는 이 부정적인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다.